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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했던 젊은이의 반성문

by babepro 2024. 12. 10.

이 글은 오만했던 지난 날에 대한 반성문이다.

얼마 전부터 종종 생각하던 것들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1. 과거

나는 스무살에 책가방 하나 메고 나와서 독립하게 됐다. 

대학생이던 나는 급히 알바를 구했다.

첫 알바비를 받기 전까지 친구들에 돈을 빌려 썼다. 

3만원을 빌려서 새 학기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2+1 컵라면을 사서 하루 1~2개만 먹었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학기중 알바비를 모아서 방학에 살 집의 월세를 마련했다. 

방학이 되자마자 공장 알바를 시작해 보증금을 모았고

두 달 후 월세가 훨씬 저렴한 반지하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시간을 돈으로 환전하는 삶을 살았다. 

가장 많은 시간 근무하고, 야간에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일터를 옮겼다.

수당으로 시간당 벌 수 있는 돈을 늘리고 근무 시간을 늘렸다. 

옮긴 곳에는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집에서는 잠만자고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주 6.5일 하루 15시간을 일했다. 

2주에 한 번 주야 교대를 위해 34시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난 이 날이 제일 싫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뭐든지 했다. 

수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출을 줄여야 했다. 

(그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또 그 때는 리스크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 

내 시간을 환전해서 얻은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밥은 회사에서 받은 라면으로 때웠다. 

(회사에서 3끼를 모두 줬는데, 밥 대신 라면, 우유 등을 챙겨갈 수 있는 곳이었다. 

라면을 챙겨오기 위해 점심 급식을 많이 먹는 날이 많았다. )

가끔씩은 나를 불쌍히 여긴 친구들이 밥을 사줬다. 

그때의 한심하고 이기적이던 나는 그 얻어먹은 밥 조차 아까워했다. 

그 돈이면 5끼를 때울 수 있을텐데 이 돈을 한 끼에 다 써야 한다니..

 

반지하의 겨울은 상상 이상으로 춥다.

잘 때는 옷을 4겹씩 껴입고 

씻기 전엔 온수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줄넘기를 했다. 

(근력운동을 했어야 했다. )

냉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학교나 도서관 등의 기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산직은 손은 바쁘지만 머리는 한가하다. 

(내가 맡은 일은 그랬다. ) 

한가한 머리의 시간이 아까웠다. 

틈 날 때마다 책을 읽고, 통근 버스에서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근무 시간엔 읽고 들은 것들에 대한 고민을 했다. 

주로 뇌과학, 심리, 경영, 철학, 공부, 성공, 재테크에 관한 책을 읽었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돈에 관한 주제가 대부분이다. 


애초의 계획은 2년 휴학이었지만 1년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젊은이의 시간이 아깝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많았다. 

고된 노동과 얽히게 되는 인간관계로 지쳐있던 내게 반가운 핑계였고

그걸 덥석 물어버렸다.  

1년간의 휴학 14개월의 노동으로 3000만원 가량을 모았다. 

남은 학교 생활을 마칠 수 있는 돈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그 때 당시 최저시급이 6030원이었다. )

 

학교를 다니면서도 알바를 2~3개씩 하고

돈을 주는 교육도 찾아다녔다. 

공부를 하면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단순하게 시간을 돈으로 환전하는게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다녔다. 

 

학교를 다니는 중에 친척의 도움으로 전세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매달 나가는 월세가 없어지니 여유가 생겼다. 

친구들도 종종 만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남은 학창시절을 다채롭게 보냈다. 

 

 

2. 현재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과거가 굉장히 불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과거는 전 세계 인류 중 상위 5% 이상의 풍요로운 삶이었다고 확신한다. 

 

사지 멀쩡하게 태어났고 건강히 자랐다. 

내 일터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언제든지 취직을 하고 그만둘 수 있었다. 

법이 보장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회사에서 안주더라도 노동부에 고발하면 받을 수 있었다. 

최저 임금이 정해져 있었고, 내가 받을 최소한의 돈을 예측할 수 있었다. 

소득에 따라 생활을 계획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식사와 통근 버스를 제공해줬다.

통근 버스는 고사하고 식사도 제공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걸 한참 후에 알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밥은 주지 않는다)

초라하다고 믿었던 자취방에도 잘 작동하는 보일러와 에어컨이 있었다.

깨끗한 수돗물이 나오고 전기가 끊기는 일은 없었다. 

디지털 도어락과 이중 잠금 장치가 있었다. 

도둑이 든 적도, 내 공간을 침범받은 적도 없었다.

안전하게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도서관이 있었다.

운영시간에 방문하기 어려웠지만 무료로 볼 수 있는 전자책이 있었다. 

좋은 퀄리티의 글과 팟캐스트를 언제든 접할 수 있었다. 

본받을 만한 사람들의 지식과 인사이트를 엿보고 꿈을 꿀 수 있었다. 

근로 장려금 수십만원을  받았다.

소득이 연 2천만원 언저리보다 적으면 근로장려금을 줬던 것 같다.

나는 여름에 일을 시작해서 그 해 수입이 적게 잡혔던거 같다.  

일년에 두 번 정도 수십만원이 들어왔는데 그게 큰 힘이 됐다. 

학기중 알바를 할 때는 수입이 더 적어서 근로 장려금을 더 많이 받았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뒤틀려있던 내게도 친구들이 있었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응원해줬다. 아직도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줬는지 모르겠다.

고맙고 감사한 친구들이다.  

무료 교육과 교육비를 받을 수 있는 교육이 많았다. 

그 교육들에 이끌려 진로를 IT쪽으로 변경했고

지금 하루하루 행복하게 컴퓨터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지금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정도이다. 

그리고 지금은 당연히 그 시절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95%는 깨끗한 상수도, 하수도, 전기, 가스, 위생적인 식사, 정비된 도로, 의료, 충분한 교육, 인터넷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힘들게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선진국에서 자란 온실 속 화초의 투정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나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어떤 불평을 해도 부끄러울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있다. 

 

삶을 내 손으로 개선했다는 것에 자부심도 있었다. 

나름대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지만,

지금의 성과는 전부 운이 만든 것이다. 

앞에 놓인 갈림길들에서 가볍게 더 나은 쪽을 선택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운이 좋게도 거기엔 표지판도 있었고,

이미 다녀온 사람의 후기, 안전 손잡이와 의료진까지 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좋은 갈림길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헤메는 사람들도 많다. 

표지판도 없고 당장 걸을 힘도 없는 곳에서도

자신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간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건강하고 교육받고 자랐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일하며 정당한 급여를 받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으며 내가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대여할 수 있다. 

배우고 싶은 대부분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현대 문명과 자연을 모두 누리며 살고 있다. 

 

나는 세상에 기여해야 하는 사람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운 좋게 모든걸 누린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갖자. 

하루하루 열심히 배우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실천을 하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개선하자.